My NBA Draft Experience: Carl Landry

by Joey Whelan
June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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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랜드리는 2007 드래프트를 위해 가족이나 친구들을 부를 여유가 없었다. 또한 화려한 프리드래프트 파티에 참석할 여유도 없었다. 랜드리는 그저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의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었다.

랜드리의 원래 계획은 부모님이 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밀워키로 날아갈 작정이었다. 식서스와의 마지막 워크아웃이 끝난 후에 비행기가 취소되면서, 필라델피아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고, 결국 공항에서 밤을 지새웠다. 드래프트 1라운드 후반이 진행될 즈음에, 예비 비행기를 타고 인디애나폴리스에 도착했고, 랜드리의 에이전트인 앤드류 베이커가 차로 대기하고 있었다. 랜드리가 2라운드 첫번째 선수로 지명되었다는 말이 나오기 불과 몇분 전에야 베이커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 생애에서 거의 최악의 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제가 드래프트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또는 제가 지명되는 걸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제 이름이 불리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생애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죠." - 랜드리

현재, 이번 오프 시즌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할, 유리한 위치인 제한적 FA가 된 랜드리는 여유를 가지고서 그 때를 돌아볼 수 있었다. 드래프트 날에서 그 위기일발의 순간이후 로켓츠로부터의 놀랄만한 지명으로부터 시작해서 루키들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수로 거듭날때까지 완벽한 소우주의 모습이었다.

랜드리의 NBA까지 여정은 대부분의 2라운드 지명자들처럼 시작되었다. 포츠머스 인비테이셔널과 올랜도 프리드래프트 캠프 같은 리그 스폰서 캠프에서 스카우터들에게 인상을 심어주길 원했다. 선수들에게서 흔히 있는 일이지만, 랜드리 또한 올랜도 캠프에 도착하고 나서 자신에 대한 여러 의문점이 있었다. 가장 큰 관심은 랜드리의 신장과 운동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퍼듀 大에서 뛸 당시, 랜드리는 6-7 PF로 알려졌었다. 이것은 BIG 10이라는 대학 무대에서는 문제될 게 없었지만, 랜드리를 여타의 그저그런 언더사이즈 대학 빅맨으로 보는 스카우터들에게는 적신호였다. 이 문제는 랜드리가 올랜도에 도착하고 6-9에 가까운 걸로 판명나면서 나서 곧바로 나아졌다.(*프리 드래프트 캠프에서 측정 결과는 신발 신고 6-8 1/2이었습니다.) 운동화 덕분에 거의 2인치가 늘어난, 측정에서의 모순은 랜드리를 꽤 어리둥절케 하였다.

”퍼듀는 좋은 학교이고, 전 스카우터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발 벗고도 측정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네요. 하지만 확실히 올랜도에서의 측정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 랜드리

다수의 NBA 관계자들 앞에서 예상보다 꽤 크게 측정된 것은 어느정도 랜드리에게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캠프에서 4일간 코트 위에서 보여준 랜드리의 퍼포먼스도 주가 상승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퍼듀 3학년 시절에 아킬레스 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후, 랜드리는 4학년 내내 부상으로 잃어버린 폭발력을 다시 찾는데 주력했다. 자연히 많은 스카우터들도 랜드리가 프로 레벨에서 따라갈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랜드리는 캠프 전체 선수들 중에 3번째로 좋은 운동능력을 선보이며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시즌이 끝난 후에 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저의 운동능력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죠. 다행히 가장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중 하나가 되면서 모든 것이 제게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 랜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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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에서의 강한 퍼포먼스로 많은 팀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많은 팀들은 개인 워크아웃을 위해 랜드리를 초청했다. 휴스턴 로켓츠의 GM 대릴 모리는 이미 캠프 이전부터 랜드리에게서 관심을 가져온 몇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랜드리의 워크아웃에서 활약은 계속해서 모리의 흥미를 자극했다.

”랜드리는 꽤 저평가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킬레스 건 부상이 때문이었지만요. 우리팀은 랜드리의 운동능력과 또 얼마나 전체적으로 회복했는지를 주목했었습니다. 아마 대학 시절이 평가에 더 도움이 되었지만, 워크아웃에서도 랜드리는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 모리

랜드리는 개인 워크아웃에서 계속해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대학 시절 대부분 골밑에서 플레이 했기에, 팀들은 랜드리의 바스켓을 등지는 능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크아웃에서 안정된 미드레인지 점프샷을 보여주면서 많은 팀들을 놀라게 하였다. 좀더 다양한 플레이를 위해 3학년 이후부터 열심히 훈련해온 점프슛은 랜드리가 NBA행 티켓을 끊는데 도움이 되었다.

랜드리가 드래프트 밤의 흥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였다. 곧바로 NBA 섬머리그 참가를 위해서 라스베가스로 갔다. 거기서 프로 무대에 적응하는데 호된 신고식을 겪었다. 게임 템포와 플레이 스타일은 랜드리가 대학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랜드리 갑작스럽게 새로운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다시 배워야만 했다.

”그 때는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전 정말 프로에서 게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돼가는 지도 몰랐죠. 거기서 정말 곤란함을 느꼈었습니다." - 랜드리

랜드리는 그 섬머리그에서 슬로우 스타트가 결국 로켓츠로 하여금 자신과의 계약을 미루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고 추측한다. 많은 선수들이 이미 계약했지만, 랜드리는 라스베가스에서 곧바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라운더로서 힘겨운 싸움에 직면했다. 결국 휴스턴은 트레이닝 캠프 시작 이틀을 남기고, 랜드리와 40만 달러가 조금 넘는 1년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비슷한 순위에 지명된 다른 선수들에 못미치는 결과였고, 휴스턴은 단지 1년 계약하는 위험을 감수했다.

랜드리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팀과 함께한 첫 몇주간은 정신없는 시기였다. 티맥과 야오밍 같은 선수들과 처음으로 플로어에서 뛰게 된 것이다. 마침내 주위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플레잉 타임을 둔 싸움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 안있어서 전 모든 게 파악되었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난 이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고, 우리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전 열심히 훈련하고 코치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제가 해야만 하는 것들을 했습니다. 결국 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죠." - 랜드리

플레잉 타임 문제는 시간이 걸렸다. 랜드리는 첫 21 게임 동안에 겨우 한 게임만을 출전했다. 그것도 덴버를 상대로 큰 점수차로 리드한 덕분에 4분이나마 출전한 것이었다. 랜드리는 1월 중순에 미네소타를 상대로 20분간 뛰며 15득점에 7/7 FG이라는 활약을 보이기 전까지 플레잉 타임을 거의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정규 시즌이 끝나고 유타와의 플레이오프에 시작될 무렵에 랜드리는 이미 로테이션의 한 축이 되어 있었다. 랜드리의 최종 기록은 게임당 16.9분 출장에 8.1득점 4.9리바운드로 무척이나 솔리드했고 필드골 성공률에서는 루키들 중에서 최고인 61.6%를 기록했다. 그리하여 랜드리는 NBA 올 루키 팀에 이름을 올렸고, 단지 2라운더가 그러한 업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랜드리는 루키로서 플레이오프를 뛰어본 것이 엄청나게 커다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경험은 랜드리에게 있어서 오직 NCAA 토너먼트 만이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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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플레이가 정말 중요하죠. 돌아가는 상황이나 코치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특히나 전 루키입니다. 선수들은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무톰보같은 선수를 보더라도 리그에서 17년이나 뛰었지만, 파이널은 단 한번만을 경험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무톰보의 마지막 파이널 경험이 될지도 모르지만, 앞 일은 알 수 없습니다. 무톰보는 팀을 위해서 많은 것을 했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러한 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코트에 나가서 훨씬 더 많은 것을 해야합니다." - 랜드리

현재 랜드리는 이미 NBA 풀시즌을 경험한, 2007 드래프트 클래스 중에서 처음으로 두번째 계약을 앞두고 있다. 랜드리와 에이전트 앤드류 베이커는 처음에 1년 계약이라는 큰 위험을 감수했지만, 유리하게 풀려나가고 있다.

”거의 도박을 한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상황이 더 좋아진거 같아요. ;)" - 랜드리

좀 더 유리한 계약을 앞두고 있지만, 랜드리는 여전히 겸손하다. 드래프트에서 자신을 지나친 팀들을 향한 적개심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으며, 루키 시즌의 이른 성공적인 모습에도 전혀 자만하지 않고 있다. 랜드리가 해왔던 단 한가지는 계속해서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다.

”저는 그저 운이 좋았고, 드래프트 때에 제 이름이 불리면서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당시에 마지막으로 지명되었더라도, 저는 여전히 감사하고 행복할 겁니다. 결국 이렇게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고, 제가 NBA에 뛰고 있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죠. 사실 이와 같은 기회를 얻는 것은, NBA를 꿈꾸는 아이들 중 백만분의 일 확률일 겁니다." - 랜드리

랜드리는 이제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 게임에 대한 열정 덕으로 돌리고 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은 스카우터들이 유망주들을 평가할때 명심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어떻게 될까? 랜드리는 어디에서 뛰길 원하는가?

”다시 휴스턴에서 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휴스턴은 훌륭한 도시이고 휴스턴에 계속 머무르길 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NBA가 비지니스라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와 제 가족에게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 랜드리

사실, 휴스턴은 이미 랜드리의 포지션에 척 헤이즈와 루이스 스콜라를 다년 계약으로 붙잡아 두고 있기에, 랜드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큰 문제는 아니다. 랜드리는 로켓츠가 이 3명의 PF중에서 2명을 동시에 코트에 기용하면서 효과적으로 스몰 라인업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2008 드래프트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랜드리는 지금 편히 쉬면서, 지난 해와는 완전히 반대편에서 드래프트를 즐길 수 있다. 비록 랜드리는 1라운드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저는 정말 2라운드를 주목해서 볼 겁니다. 누가 슬리퍼가 될 지 기대가 크거든요. 저는 언더독을 좋아합니다." - 랜드리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랜드리는 언더독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출처 : http://www.draftexpress.com/article/My-NBA-Draft-Experience-Carl-Landry-2923/





Posted by Third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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