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mp's eldest son, Shawn Jr., making his own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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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ADELPHIA -- 한 아이가 필라델피아 대학 체육관 플로어에 앉아있었다. 이제 막 리복 올-어메리칸 캠프 첫 게임을 뛰고난 후 였다. 캠프 관계자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듯, 다가와서 물었다. "니가 Dan Jennings니?"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 아이의 이상한 시선뿐.


그 남자는 질문을 고쳐 다시 물었다. "얘야, 니 이름이 뭐니?"

"Shawn Kemp."

"뭐라구?"

"Shawn Kemp라구요."

그 남자는 약간 불쾌한듯, "넌 Shawn Kemp가 아냐."라고 말한 후 가버렸다.

등 뒤에 아무런 이름이 씌여있지 않은 71번 저지를 입고 있는 이 아이가 그 남자를 속인 건 아니었다. 물론 소닉스 영광의 시절과 함께한 그 Kemp는 아니었지만, 이 아이가 바로 전 NBA 스타를 아버지로 두고,(적어도 6명 이상의 다른 어머니를 두는) 적어도 8명 이상의 아이들중 장남인, Shawn Kemp Jr.였다. 이렇게 Reignman의 DNA는 또다른 PF를  리쿠르팅 레이더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주니어는 이제 17살이다. 코와 귀, 이마는 아버지와  닮긴 했지만, 전체적인 외양은 좀 더 친근한 모습이다. 6-9의 주니어는 아버지와 그저 산발적인 만남뿐이었고, 어머니 Genay Doyal의 손에서, 조지아주 마리에타에서 자랐다. 주니어는 Rival.com에서 별 4개 평가를 받았고, 2009 클래스 중에서 전체 83위에 랭크되어 있다. 알라배마, 조지아, 신시내티, 미시시피 대학으로부터 장학금 제의를 받았으며, 워싱턴, 인디애나 대학 또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2009년 겨울이 되어 주니어의 대학 데뷔가 이루어지고, 거기다 TV 중계까지 있다면, 지역 방송에서는 분명 아버지 Kemp의 플래쉬백을 방송에 내보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제가 아버지처럼 플레이한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저는 저 자신만의 사람이 되길 원해요." - 주니어

1988년 켄터키 대학에서 한 게임도 뛰지 못하고 퇴학되었지만, 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시애틀에 지명된 아버지와는 다르게, 주니어는 아직 일류 유망주로 보긴 힘들다. 지난 화요일 플로리다의 Billy Donovan, 듀크의 Mike Krzyzewski, 그리고 매릴랜드의 Gary Williams를 포함한 많은 눈에 띄는 디비전 I 감독들이 주니어의 리복 캠프 팀('Jason Terry'팀이라고 이름 붙여진) 플레이를 지켜봤다. 주니어는 팀의 첫 득점을 덩크로 성공시키며,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결국 4득점 2리바운드에 그쳤다. 보통 섬머 올스타 캠프는 가드들이 압도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두번째 게임에 이르러서, 주니어의 임팩트는 현저히 줄어들며, 2득점 2리바운드에 그쳤다.

하지만 무시당하기엔, 주니어는 너무 많은 'upside'(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리쿠르팅 용어인, *발전가능성)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니어의 성장 잠재력에서 시작한다. 주니어가 다니고 있는 체로키 고등학교의 코치인, Roger Kvam은 "주니어의  키가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거대합니다. 이미 19 사이즈죠. 주니어의 윙스팬은 7-1에 달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주니어 얘기로는 담당 의사로부터 주니어가 21살 정도 되면 키가 7피트까지 자랄 것이라응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주니어는 캠프 게임에서 제한된 일면만 보였다. 8학년 때까지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하지 않았었지만, 덩크 포스에 있어서는 빠르게 발전했다. Kvam 얘기로는 주니어는 이번 시즌 28 게임에서 총 60개 이상의 덩크슛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또한 슛의 70%가 림 가까이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주니어는 아버지 만큼 세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Kvam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주니어는 사이즈에 비해 아주 폭발적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아버지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죠."

워싱턴주 벨뷰 시에서 자란 주니어의 어머니, Goyal은 1989년, Kemp가 19살 루키로 막 시애틀에 도착한지 몇주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었다. 1991년 여름에 아이가 태어났지만, 결혼에 이르지는 않았다. 함께 아이의 이름을 Shawn Kemp Jr.라고 지었다. 처음 몇년 간은 정기적으로 소닉스 게임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었겠지만, 유명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는 게 주니어에게 영향을 끼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 Doyal

주니어가 5살 때, 어머니의 일 때문에 애틀란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2000년, 아버지의 두번째 팀인 캐버리어스와 호크스 간의 게임을 보러갈 때까지, 주니어는 아버지와 어떠한 만남도 가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 기억으로는 그때가 3살때 이후로 처음 만난 걸 겁니다. 게임이 끝나고 아버지가 팀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 15분 정도 얘기를 나눴죠. 뭔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요. 그저 ..." - 주니어

주니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NBA에서 아버지를 보는 내내 궁금함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그것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적의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주제에 있어서, 주니어는 관대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저 쿨하게 대하려고 했죠." Kemp의 이복 자녀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긴밀히 하는데 흥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주니어는 존재조차 몰랐던 이복 동생들을 MySpace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첨엔 걔들도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던 거 였을 겁니다. 전 어느날 메시지를 받았죠. '내가 니 동생이야.' 저는 그저 '어, 그래'같은 말만 했을 뿐이었죠." - 주니어) 결국 주니어는 샌디에고에 살고 있는 11살난 이복동생, Kyree Kemp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2006년까지 아버지로부터의 특별한 만남은 없었다. 하지만 Kemp의 마지막 컴백 시도와 두번째 약물관련 체포 이후, 주니어와 만남을 가지려 노력했다. Kemp는 현재 결혼한 상태이고 지금 아내와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휴스턴과 시애틀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현재는 주니어와 정기적으로 얘기를 나눠오고 있다.

"주니어는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어요. 어쨋든 늦더라도 안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 Doyal

Doyal의 동생중 한명인 Harold는 90년대 웨스턴 워싱턴 대학에서 농구를 했고, 지금은 스페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오프 시즌에는 주니어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Harold는 최근 바르셀로나의 L'Hospitalet에서 이번 2008 드래프트에 소닉스 1라운더로 지명된 Serge Ibaka와 함께 뛰기도 했다. 하지만 Gary Payton과 함께 소닉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중 하나였던 Kemp는 이제서야 장남의 농구 커리어에서 아버지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Kemp Sr.는 지난 시즌 마지막 즈음에 주니어의 고교 팀 연습에 잠깐 들르기도 했다. 또한 지난 달 포틀랜드에서 벌어진 AAU 토너먼트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주니어의 애틀란타 지역 Worldwide Renegades에서 뛰기도 했다.

주니어는 피의 부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지난주 주니어는 아버지의 소닉스 40번 레트로 저지를 입기도 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S.K.'와 '40'의 문신이 새겨져있다. 결국 이번 시즌에 등번호를 40번으로 바꾸었다.

"당장 잠시라도 40번을 입고 싶었어요." - 주니어

리복 올-어메리칸 캠프가 시작되기 며칠전, 주니어는 아버지로부터 전화로 초대를 받았다. Kemp는 처음으로 아들의 마지막 고교 시즌을 위해서 휴스턴에서 함께 훈련하기 하려고 초대를 한 것이었다. 여전히 세부적인 것은 조정이 필요하지만, AAU 토너먼트가 끝난후 곧바로 만나길 원했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재회가 될 것이다.

"얘 아버지는 함께 농구 연습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제 생각에도 아주 좋은 일 같아요. 주니어가 자신보다 더 낫길 원하고 있어요." - Doyal



출처 : http://sportsillustrated.cnn.com/2008/writers/luke_winn/07/09/shawn.kemp/index.html







Posted by Third Eye